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민족운동단체. 일명 조선사정조사연구회라고도 한다. 1925년 9월 15일 서울 명월관에서 백남훈(白南薰)·백남운(白南雲)·박찬희(朴瓚熙)·백관수(白寬洙)·안재홍(安在鴻)·박승철(朴勝喆)·김준연(金俊淵)·홍성하(洪性夏)·김기전(金起纏)·최원순(崔元淳)·선우전(鮮于全)·한위건(韓偉健)·조정환(曺正煥)·김수학(金秀學)·최두선(崔斗善)·조병옥(趙炳玉)·이긍종(李肯鍾)·홍명희(洪命熹)·유억겸(兪億兼)·이재간(李載侃)·이순탁(李順鐸) 등이 조선의 사정과 현상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조사, 연구하고, 이에 관한 공개강연과 팜플렛 발간을 목적으로 창립하였으며, 교육·재정 금융·상업·농업·공업분과 등을 두기로 하였다. 1920년대 전반기에 민족주의운동 내부에서는 분화가 일어나, 자치론을 내걸며 일제와 타협하려는 민족개량주의자들과 이를 거부하는 비타협민족주의자들로 나누어졌다. 1925년에 들어서 이미 민족해방운동전선에서 탈락한 민족개량주의들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 즉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간에는 민족협동전선론이 논의되었고, 이에 따라 각 세력들은 자체 조직을 정비하였는데, 이 때 비타협민족주의자들이 결성한 조직이 바로 이 단체이다. 각종 강연회를 개최하였는데, 1925년 11월 세금제도에 대한 조사보고대회를 개최한 것이 그 한 예이다. 뒤에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었을 때 회원들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조선사정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