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1일, 조선국민당(朝鮮國民黨)을 창당한 안재홍(安在鴻)이 같은 해 9월 24일, 사회민주당(社會民主黨), 자유당(自由黨), 민중공화당(民衆共和黨), 근우동맹(槿友同盟), 협찬동지회(協贊同志會) 등의 군소정당을 흡수·통합하여 재창당한 정당. [설명] 1945년 9월 1일 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준) 부위원장이었던 안재홍(安在鴻)이 점차 좌경화되어 가는 건준조직에 불만을 품고 그 중앙집행위원회 개편 때 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조선국민당(朝鮮國民黨)을 창당하였다. 같은 해 9월 24일에는 사회민주당(社會民主黨)·자유당(自由黨)·민중공화당(民衆共和黨)·근우동맹(槿友同盟)·협찬동지회(協贊同志會) 등의 군소 정당을 흡수, 통합하여 당명을 국민당으로 개칭, 재창당의 형식을 취하였다. 합동선언 때의 결의문 요지는 ① 임시정부 절대 지지, ② 연합국에 감사 표명, ③ 건국도상에 있어서 연합국의 후원 요망 촉구, ④ 38선 분단으로 인한 교통 장해의 철폐 요구 등이었다. 당 조직은 위원장에 안재홍, 부위원장에 명제세(明濟世)·박용희(朴容羲) 등이 선출되었고, 총무부를 비롯한 7개 부서를 두어 각 부에 부장과 차장을 임명하였다. 재외전재동포(在外戰災同胞)와 실업자 구제대책을 위한 초당적인 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결의,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18개 항의 정책사항 이외에 ① 민족국가의 건전한 발전과 국제협력의 최선한 분담자됨을 기함, ② 국민개로(國民皆勞)와 대중공생(大衆共生)을 이념으로 신민주주의의 실현을 기함, ③ 민족문화의 전면적 앙양과 함께 인류대동의 조류에 순응하기를 기함과 같은 정강을 채택하는 한편, 정권 획득과 관료적 야심에서 벗어나 민족적 정치훈련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고, 실천행동으로 민족통일운동에 의한 완전 자주독립을 기도할 것을 내세웠다. 그러나 1946년 4월 18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결성 때 그 주축이 되어 합당에 대한 조건 없이 그 일부가 흡수되었으며, 또 일부는 오세창(吳世昌)·권동진(權東鎭) 등이 이끄는 신한민주당(新韓民主黨)에 합류하는 등 본래 그 지지 기반이 미약했던 국민당은 안재홍이 1947년 7월에 미군정청 민정장관에 임명되자 저절로 해산되고 말았다.

국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