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즉위 뒤 김일경(金一鏡) 등의 소론계가 노론계의 집권을 막으려고 일으킨 신임사화가 날조된 것임이 드러나 소론계가 몰락하자, 불만을 품은 김일경의 잔존세력은 일찍부터 많은 반역모의를 계획하였다. 그런데 1775년 나주벽서사건을 수습한 것을 기념하려고 시행된 토역경하정시(討逆慶賀庭試)에 응시한 심정연(沈鼎淵)이 답안지에 조정을 비방하고 집권대신을 공격한 내용이 문제가 되어 역모사건이 발각되어 소론세력은 결정적으로 제거되었다.이 역모를 도우려고 조직된 교영계는 처음에는 훈장 유봉성이 학동을 가르칠 목적으로 마을사람의 동의 아래 조직된 서당계였으나, 역모에 관련되면서 뜻을 같이한 동지로서의 교영계로 새롭게 바뀌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드러남으로써 역모는 실패하였다.
교영계 역모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