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시대에 승려에게 실시한 과거(科擧)이다. 958년(광종 9) 처음으로 과거제도를 실시하면서 이와 병행하여 승과를 설치, 승려에게도 시험에 의한 출세의 길을 열어주었다. 처음에는 부정기적으로 실시하다가 선종(宣宗) 때 문관 시험과 마찬가지로 3년마다 시행하는 정기시험으로 하였다. 선종선(禪宗選)과 교종선(敎宗選)으로 나누어서 뽑았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와 같이 승과를 두었는데, 선종선은 선과(禪科), 교종선은 교과(敎科)라 하였다. 선과는 선종의 종무원사(宗務院寺)인 흥천사(興天寺)에서 시행하였고, 교과는 교종의 종무원사인 흥덕사(興德寺)에서 예조 관원의 입회하에 시행하였다. 불교탄압정책과 승과를 폐기하라는 유신(儒臣)들의 끈질긴 주장 속에서 연산군 때까지 명맥을 이어오다가 중단했다. 이후 1545년(명종 즉위) 어린 명종(明宗)의 섭정을 하게 된 독실한 불교신도인 문정왕후(文定王后)는 다시 봉은사(奉恩寺)와 봉선사(奉先寺)에 선종 ·교종의 종무원을 두게 하고, 40년간 중단되었던 승과시험을 실시하였다. 문정왕후는 이후 불교를 억압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으나 유신들의 강한 승과폐지 요구와 이에 동조한 성균관 유생들의 공관퇴거(空館退去)로 1565년 명종은 선종 ·교종의 제도와 승과제도를 폐지하기로 하고 보우를 제주도에 유배하였다. 승과 실시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 예컨대 모두 몇 회나 실시되었으며, 몇 명의 합격자가 배출되었는지 등의 문제에 관한 자료도 전하는 것이 없다.

승과 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