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특히 19세기에 한 명 혹은 극소수의 권세가를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던 정치형태.

원래 세도정치(勢道政治)란 ‘정치는 널리 사회를 교화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라는 사림(士林)의 통치이념에서 나온 이상적인 정치 도의를 의미했다. 그러나 순조대 이후 척신(戚臣) 또는 총신(寵臣)이 강력한 권세를 잡고 전권(專權)을 휘두르는 부정적 정치형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정조의 유탁으로 김조순(金祖淳)이 그의 딸을 왕비로 들여, 순조를 보필하게 되면서 안동김씨에 의한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중앙의 요직은 모두 이들 일족이 독점하였다. 그 뒤 조만영(趙萬永)의 딸이 익종의 비가 되어 헌종을 낳자 헌종 때는 풍양조씨(豊壤趙氏)에 의한 세도정치가 15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철종의 비가 김조순의 일문인 김문근(金汶根)의 딸로 다시 안동김씨의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로 이어졌다. 이로부터 약 15년간의 세도정치는 타락의 절정을 이룬 권세정치로, 종실(宗室)이라도 이들에게 눌려 살았다. 이어 고종의 생부로서 정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의 세력을 몰아내고 독재적 세도정치를 펴나가면서 외척의 대두를 경계하여 왕비의 간택에도 신중을 기하였으나 10년 만에 명성황후에 의해 실각한 뒤로는 한말까지 민씨 일족의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가 계속되어 국가 요직을 차지한 민씨 일족이 1,000명을 넘었다.

세도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