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7월 7일 부산의 피난국회에서 통과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첫번째의 헌법개정.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의원이 60% 이상 당선되었다. 이러한 국회 상황에서 이승만(李承晩)은 재집권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일련의 정치 공세를 강화하였다. 이승만은 1951년 11월 30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 개헌안은 1952년 1월 18일 국회에서 찬성 19, 반대 143으로 부결되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이승만은 부산을 포함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전라북도 일부 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국회의 정치 활동을 억압하고 야당 의원들을 구속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라회(新羅會)를 주도한 국무총리 장택상(張澤相)은 1952년 6월 20일에 이른바 발췌 개헌안(拔萃改憲案)을 제출하였다. 장택상은 발췌 개헌안이 야당이 제출한 내각 책임제와 정부의 대통령 직선제를 절충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발췌 개헌안은 이승만의 최대 관심사인 대통령 직선제가 핵심이었다. 발췌 개헌안은 7월 4일 헌병과 무장 경찰, 그리고 민중자결단·백골단·땃벌떼 등의 정치 테러 집단을 동원하여 국회를 포위한 가운데 기립 표결로 찬성 163, 기권 3으로 통과되어 7월 17일 공포되었다. 이승만은 개헌안이 공포된 뒤 곧이어 실시한 8월 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로써 이승만은 재집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출처: 부산문화역사대전

발췌 개헌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