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여러 정치단체가 합동하여 광복 후의 혼란기에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하여 발족시켰던 중도적 정치조직. 1946년 5월 8일의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 좌우합작운동의 부진, 1947년 7월 19일 여운형(呂運亨)의 피살 등은 중간파세력의 행동통일을 확대, 강화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였다. 이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1947년 12월 20일 김규식(金奎植)을 위원장으로 하여 발족한 민족자주연맹은 ‘조선을 민주주의화할 뿐만 아니라 또한 민주주의를 조선화하여야 할 것’을 내세우고, ‘민주주의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조직체로 발족되었다. 좌우 어느 쪽으로의 편향을 배제하고, 미소공동위원회 대책협의회·민주주의독립전선·시국대책협의회·좌우합작위원회 등이 발전적 해체를 전제로 하여 18개 정당과 5개 단체 대표 및 개인들이 참여하여, 1947년 10월 6일 결성준비위원회를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열었다. 결성준비위원회는 10월 8일 제2차 준비위원회에서 위원장에 김규식, 정치위원회 위원장에 홍명희(洪命憙), 위원으로는 안재홍(安在鴻)·김명준(金明濬)·김호(金乎)를 위촉하고, 부서로서는 총무국·조직국·전선국·비서처를 두기로 하고, 재무위원회 위원장 김시현(金始顯) 외 위원 7명 등을 선출하였다. 결성식은 천도교 강당에서 개최되었는데, 중앙과 지방의 대의원 800여 명이 참석하였고, 선언·강령·당면정책 및 규약 등을 채택하였다.

민족자주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