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6년(명종 6년) 충청도 공주의 명학소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및 소민(所民)들의 난. 1년 이상 진압군과 대치하며 항쟁하였으나, 결국 주동자인 망이와 망소이가 잡혀 실패하고 말았다.

망이⋅망소이의 난은 결국 실패했지만, 무신 집권기 가장 규모가 컸던 농민 봉기 중 하나로 장기간 지속되면서 농민들의 항쟁 의식을 자극하는 한편 지배층으로 하여금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 계기가 되었다. 망이⋅망소이 봉기를 도화선으로 폭발적으로 농민⋅천민 등 하층민의 봉기가 증가했으며, 특히 이 봉기를 통해 지배층은 부곡제 지역의 개편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향⋅소⋅부곡 지역의 점차적 소멸에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무신 집권기 과도한 수탈로 인한 전형적인 농민 봉기임과 동시에 차별 받던 부곡 지역민의 신분 상승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무신 집권기 대표적 농민 봉기 사례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무신 집권기 농민과 천민의 봉기 (출처: 비상교육 한국사 교과서 p7. 2009 개정 교육과정)
무신 집권기 농민과 천민의 봉기
(출처: 비상교육 한국사 교과서 p7. 2009 개정 교육과정)
망이·망소이의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