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신규식(申圭植) 등이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조직한 단체. 1911년 3월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중국혁명에 적극 참여했던 신규식(申圭植)을 주도로 하여 1912년 7월에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 조소앙(趙素昻), 문일평(文一平), 김규식(金奎植), 박찬익(朴贊翊), 조성환(曺成煥), 신석우(申錫雨), 윤보선(尹潽善), 장건상(張建相), 여운형(呂運亨), 조동호(趙東祜), 홍명희(洪命憙) 등이 참여했다. 상하이에 본부를 두고 베이징[北京]·톈진[天津]·만주 등 중국지역과 구미(歐美), 일본에 지사를 두었는데, 본부의 이사장과 총재는 신규식과 박은식이 맡았다. 동제사는 독립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청년교육에 주력하여 1913년 12월,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했고, 군사교육을 위해 한국학생들을 중국의 바오딩[保定]군관학교·톈진군수학교·난징[南京]해군학교·광둥강무당[廣東講武堂] 등에서 교육받게 했다. 또한 중국혁명과의 협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1912년말경 진기미(陳其美)·송교인(宋敎仁)·황개민(黃介民)·여천민(呂天民) 등과 함께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를 조직했다. 1915년 베이징의 독립지사들과 연대하여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을 결성했으며, 1917년 스톡홀름 만국사회당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조선사회당으로 개칭했다. 1918년 11월에는 조직 내의 소장파들로 신한청년단을 결성했다. 동제사는 1919년 수립된 상해임시정부의 정책방향과 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신규식이 순국한 1922년 9월 이후 박찬익이 이사장직을 맡았으나, 이후의 활동은 알 수 없다.

동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