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4월 15일 경성공회당(京城公會堂)에서 반일운동에 대항하여 내선융화의 실현을 표방하며 조선총독부 고위관리와 친일 조선인들로 구성된 친일단체. 운영은 시부자와 에이이치(澁澤榮一) 등 일본재계 유력자 등의 지원에 의존했고 조직은 회장 1명, 부회장 2명, 평의원회장 1명, 이사 30명(전무이사 1명, 회계이사 1명, 상임이사 12명), 평의원 약간 명, 감사 2명으로 구성되었다. 강연회 등을 통해 독립사상과 사회주의 사상을 배척했고, 내성융화, 미풍양속, 노자협조, 농촌징흥, 사회개건 등을 선전했다. 1930년대 초까지 조선인들의 독립은 물론 자치운동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이나 잠업 장려정책에 적극 호응하여 산업강습회를 개최했다. 기관지로 『동민(同民)』을 발행했으며 일본측의 재정지원으로 30년대 말까지 각종 사업을 벌였으나 이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개편)에 흡수되었다.

동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