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부족집회소(部族集會所)가 발전하여 전형된 정치기구. 도당(都堂)이라고도 한다. 초기에는 왕과 관리가 모여 국가의 정사(政事)를 의논하고 행정사무를 집행하는 중앙정청(中央政廳)의 성격을 띠었으나, 국가가 발전하고 정치기구가 복잡해져 행정부문이 분리된 뒤로는 중대회의와 연회(宴會), 기타 의식(儀式)을 행하는 반형식적인 존재로 변하였다. 신라의 화백(和白)이 그 좋은 예이며, 고려시대의 도당회의(都堂會議)인 도병마사(都兵馬使), 조선시대의 비변사(備邊司)와 의정부(議政府)도 그 유제(遺制)라 할 수 있다. 남당에는 임금과 신하의 좌석을 구별하는 궐표가 있어, 왕은 가장 높은 자리에 서고 그 밑에 신하가 관계(官階)의 순서에 따라 정렬(整列)하였다. 신라에서는 249년(첨해왕 3)과 미추왕(味鄒王) 때 남당에 관한 기록이 있으나, 실제로 성립된 것은 356∼417년(내물왕∼실성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백제에서는 261년(고이왕 28)에 왕이 남당에 임석하여 대신들로부터 정사를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남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