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1947년 사이에 2차에 걸친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으나 미국과 소련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하여 아무런 성과도 없이 무산되고 말았다.

▶ 1차 회의(1946년 3월 20일 ~ 5월 6일)
쟁점은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조직하기 위해 협의할 조선의 정당 및 사회 단체의 범위였다. 소련은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결정(신탁통치 수용)을 반대하는 단체는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원하는 모든 단체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5월 6일 무기휴회를 선언했다.

▶ 2차 회의(1947년 5월 21일 ~ 10월 21일)
초반에는 진전을 보이는 것 같았으나, 1차 회의 때의 동일한 교착점으로 돌아갔다. 미국은 유엔에서 한국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하였고, 소련이 서울에서 철수하면서 10월 21일 종결되었다.

1947년 9월 17일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정식으로 유엔 총회에 상정하였고,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결성되어 1948년 1월 8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미소 공동 위원회